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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뇌졸중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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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 이야기뇌졸중을 이긴 사람들

2018년 뇌졸중을 이긴 사람들 수기 공모
“긍정의 노력”
최우수작양O엽

안녕하세요. 저는 2011년 1월 21일, 17살의 나이에 발생했던 뇌졸중을 이겨내고 현재 열심히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얼마 전 본격적인 개강에 앞서 병원에서 ‘병동 돌봄 봉사’를 하며 환자분을 재활치료실에 모셔다 드리던 중 붙어있던 ‘뇌졸중을 이긴 사람들’ 포스터를 보고 뇌졸중에 걸린 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통하여 뇌졸중을 극복한 경우를 발굴, 홍보하는 취지에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수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랬듯, 저의 이야기가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가졌거나 겪고 있는 환자분과 가족들에게 또 다른 희망이 되어 그분들 역시 모두 극복하기를 바랍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생긴 꿈은 생명과학이 재미있어서 생명과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공부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행복했던 제 첫 번째 인생은 순탄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3이 되던 해 겨울방학, 제 첫 번째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게 되는데, 저의 마지막 기억은 다음과 같습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집에 오는 길부터 매스꺼웠지만, 잠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빠르게 집으로 왔다. 그러나 집에 온 직후에는 말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두통이 생겼고, 나는 어서 자야한다고, 자야한다고 생각하며 누웠다. 아니, 정확히는 내 방바닥에 쓰러졌다. 이 사건 후에 나는 20일 뒤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며 그곳은 주변이 새하얀, 그전까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병원 안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20일간의 내용이 검은색으로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중간 중간 약간의 기억들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꿈인 줄 알았습니다. 꿈이라기엔 너무 긴, 끝나지 않는 이상한 병원 꿈. 내용이 참 이상했습니다.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부모님이 자꾸 저를 주물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안마해드려도 모자라는 판에……. 저는 이 꿈에서 깨어나면 꼭 부모님께 시원하게 안마해드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제가 현실임을 깨닫는 날, 어머니께 오늘이 며칠인지 계속 반복해서 물었다고 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날짜와 많은 괴리가 있었습니다. 또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는데 바로 내가, 뇌출혈로 이미 개두술을 했으며 감압을 위해 뒤통수의 머리뼈가 없는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나긴 꿈에서 깨어난 순간, 저는 현실을 부정하며 끊임없이 울었습니다.

비록 사춘기 이후로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지만, 천주교 신자였던 전 하느님을 원망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제가 쓰러진 후 적어도 5시간 뒤에나 병원에 갔다는 사실입니다. 골든타임이 중요한 뇌혈관질환에서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울음을 멈추고 내 몸을 점검해보니,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며 말을 한 글자 이상 연속으로 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몸의 왼편 전체는 물을 잔뜩 머금은, 몸에 딱 맞는 수영복을 입은 듯 무거웠습니다. 이 중 다른 것보다도 당장 앞이 제대로 안 보이는 것이 가장 무서웠는데, 이 때문에 저는 ‘아! 내 인생은 이제 망했구나!’라고 한탄했습니다. 잔인한 말이었지만 속으로 도대체 왜 나를 살리셨냐고 하느님께 계속 외쳤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께 내가 앞으로 어떤 장애를 가지고 살지 사실대로 모두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충격 받을까봐 일부러 다 안 말해주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디까지 나아질지는 제 의지와 마음속의 희망, 재활여부에 달려있으며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직장을 그만두시고 제 간호에 전념해주셨고, 며칠의 시간이 흐르자 다행히 시력이 서서히 돌아왔습니다. 또한 다시 밥을 제대로 먹으며 조금씩 움직이니 20일간 약해졌던 온 몸의 근육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앉았을 때 안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상태가 된 후 어머니가 책 한권을 말씀해주셨는데, 하버드 뇌 과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 박사의 책은 절망적인 제 상황에서 희망의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녀도 뇌졸중을 경험했는데, 이를 평생 연구해왔던 전문가의 입장에서 움직임, 언어, 자각 능력 등의 뇌 기능이 하나씩 멈춰가는 걸 경험하며 제 3자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책뿐만 아니라 그녀의 TED강의도 감명 깊게 보았는데, 저에게 더욱 도움이 되었던 것은 나와 비슷한 경험뿐만 아니라 이를 대하는 그녀의 ‘긍정’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녀는 뇌졸중임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고 합니다.

‘맙소사! 내가 뇌졸중이야, 뇌졸중이야……. 하지만 자기 자신의 뇌 기능을 연구하고 그것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이렇게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뇌 과학자가 몇이나 되겠어?’

뇌졸중은 환자 본인의 입장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의 가장 힘들고 슬픈, 불행한 질병입니다. 그녀 역시 개두 수술 후 8년간의 회복기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긍정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훌륭하며 존경스러웠습니다. 덕분에 약간의 여유를 찾게 되었고, 그녀를 통해 제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신경과학자. 전 정확히는 오른쪽 소뇌출혈이었는데, 생각해보니 고1때 배웠던 소뇌의 기능인 균형능력과 미세수의근 조절이 정말로 안 되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꿈이 생기자 저는 신체적 고통보다 더 중요했던 정신적 고통을 극복해나갈 수 있었고, 비로소 스스로의 마음속에 갇혀있었던 내가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보게 되면서, 나뿐만이 아닌 서로 각각의 다른 이야기를 가진 여러 다른 환자들과 그들의 보호자, 그리고 신경외과 의사들이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들으며 최종적으로 신경외과 의사가 되기로 다짐하게 됐습니다.

이전까지 전 끊임없이 되뇌고 고심했습니다. 나에게 한 번 더 삶의 기회를 주신 이유가 뭘까. 이렇게 탐구하던 질문의 답을 깨달은 후, 일반 사람도 힘든 외과의사의 길을 가기 위해 저는 우선 몸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신의 병이 치유되자 몸은 천만다행으로, 예를 들어 왼손을 살리기 위해 글쓰기를 제외한 양치질, 젓가락질, 컴퓨터마우스와 같은 모든 일상생활의 활동을 이쪽으로 하고 천 조각 이상의 레고를 왼손으로 조립하는 등, 피나는 노력의 재활과정을 통해 점차 회복되었습니다. 또한 수 십 권의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며 발음 연습을 다시 했고, 퇴원 후 고등학교에 복학한 뒤에도 꾸준히 언어와 운동 재활을 하여 정상 수준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확고한 목표가 있으니 공부 역시 열심히 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여 다시 공부를 시작한지 2년 만에 드디어 의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뇌졸중을 겪기 전까지는 의료계와 관련된 꿈이 전혀 없었지만, 이를 계기로 두 번째 인생에 다시 태어났고 앞으로 남은 평생에서 실천할 수 있는 소중한 꿈이자 ‘한 번 더 주어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왜 의과대학에 들어왔나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리고, 그 분들 모두가 저와 같이 희망을 가지고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통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물론 “저와 같은 아픔을 겪는.”

마지막으로, 제가 재활하고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 요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장 첫째는 부모님과 여동생까지 모든 가족의 무한한 사랑이었습니다. 덕분에 ‘내 인생은 이제 망했다’고 좌절하던 절망적인 상황에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오랜 시간 꿈을 꿨듯이 환자가 의식이 없어보여도 언제나 사랑을 주셔야합니다. 둘째는 스스로 마음속에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음인 재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합니다. 앞서 말한 가족들의 사랑에서 이어질 수도 있고, 저처럼 새로운 꿈을 가짐으로서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희망을 찾기 위해 자기 마음속에 갇혀있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며 여유를 갖는 것이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는 재활입니다. 제가 했던 방법들 중 소개해드리고 싶은 것은 위에도 언급했지만 마비된 쪽을 계속 쓰는 것입니다. 뇌졸중의 후유증 중 마비가 가장 많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다른 예로, 시력이 점차 돌아왔을 때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얼굴 근육과 함께 눈을 움직이는 근육도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를 않아서 한 쪽 안구가 제 의지와 다르게 계속 쳐졌었는데, 이를 위해 항상 다른 눈을 안대로 가리고 계속 이쪽으로만 보려고 집중했습니다. 가족의 사랑, 자기 마음속의 희망 등이 충족된다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모든 일상생활을 재활로 바꾸어 더욱 빠르게 회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미래를 그리며 전 항상 나의 의술로 환자들을 살리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게다가 생명을 살리는 것 이상으로 나 역시 내가 받았던 희망처럼 그들에게 ‘한 가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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